임형백 성결대학교 국제개발협력학과 교수, 현 한국국제협력단 전문위원.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 '한국 국토 공간구조의 형성과 변화' 등 10편 이상의 저서, 150여 편의 논문 학회지에 게재, 법무부 이민정책자문위원 역임.
임형백 성결대학교 국제개발협력학과 교수, 현 한국국제협력단 전문위원.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 '한국 국토 공간구조의 형성과 변화' 등 10편 이상의 저서, 150여 편의 논문 학회지에 게재, 법무부 이민정책자문위원 역임.

【서울 = 다문화TV뉴스】 임형백 성결대학교 국제개발협력학과 교수 = 서양의 민족주의는 유럽의 산물이고, 동양과 다를 수 밖에 없다.

영국의 역사 사회학자 앤서니 스미스(Anthony D. Smith)는 민족을 보는 입장을 '근대주의자'와 '원초주의자'로 구분하였다.

'근대주의자(modernism)'는 민족을 산업화의 도래에 따른 근대적 현상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근대주의자는 민족이 사회와 역사구조 속의 자연적인 혹은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자본주의, 관료제, 그리고 세속적 공리주의처럼 매우 근대적인 발전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즉 민족은 근대적인 현상이며, 민족주의는 인간 본성이나 역사에 근원을 둔 것이 아니며, 단지 민족주의가 근대의 조건에 잘 맞았기 때문에 오늘날 전 세계에 퍼졌다는 것이다.

반면 '원초주의자(primodialism)'는 민족적 유대와 감정을 인간성의 보편적 특징으로 보는 입장이다. 원초주의자는 민족은 역사의 자연스러운 단위이고 인간 경험의 통합적 요소라고 주장한다. 또 고대에도 '근대적' 민족개념에 해당하는 민족적 정체성과 성격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은 민족이 19세기의 발명품이라는 주장에 반대한다.

동양에 속한 대한민국은 민족주의를 오래된 사조로 인식하고 불변적 요소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서구의 민족주의(nationalism)는 근대의 산물이다.

특히 서구의 민족주의는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을 통하여 만개한 18세기 이후의 산물이다. 18세기가 되기까지 민족에 기초하여 국가와 영토가 규정되지도 않았고, 사람들은 도시국가, 봉토·영주·왕조국가·종교단체·교파 등에 묶여 있었다.

민족국가의 개념은 역사가 짧은 새로운 관념이며, 과거에는 이상적 국가형태로 서술되지도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19세기는 유럽에서 민족주의의 시대로 불리었다.

아시아의 면적은 4천458만㎢이다. 사실 유럽은 작은 곳이다. 유럽의 면적은 1천180만㎢이다. 983만4천㎢인 미국보다 조금 크며, 한반도의 약 46배이다. 유럽은 지구 표면의 2%, 육지의 약 6.8%에 불과하다. 2022년 기준으로 유럽인구는 약 8억2천만 명으로 세계인구의 약 10%이다. 하지만 약 50여 개의 국가가 존재한다. 국가의 수에 있어서는 아시아와 큰 차이가 없다.

유럽을 지리학적으로 살펴보자. 유럽은 피레네산맥, 스칸디나비아산맥, 알프스산맥, 카르파티아산맥, 우랄산맥, 카프카스산맥 등 커다란 산맥이 많다. 특히 서유럽에는 평야가 적다. 커다란 국가를 세우기도 어렵고 통치하기도 쉽지 않다. 실제로 유럽은 단 한번도 통일된 적이 없다. 동아시아 문명권에 있는 인더스강, 황하강, 나일강,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과 같은 커다란 강은 없다. 커다란 문명이 발생하기란 쉽지 않다.

유럽을 형질인류학(physical anthropology)적으로 살펴보자. 구석기 시대에 아프리카에서 수렵 채집인인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으로 이주했다. 이들 중 크로마뇽인(Cro-Magnon man)이 유명하다. 그러나 현대과학을 적용한 유전자의 분석에서 크로마뇽인에게서는 백인의 특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크로마뇽인은 유럽인의 조상이 아니라고 본다. 오늘날 유럽고고학계는 크로마뇽인을 유럽초기현대인류라고 부른다.

신석기 시대에 중동에서 농경인인 고유럽인(Old European)이 유럽으로 이주했다. 고유럽인 중에서는 펠라스기족, 미노아인, 레레게스인, 이베리아족, 누라게인, 에트루리아인, 라이티족, 카모니카족, 바스크족 등이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 바스크족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졌다.

청동기 시대에 러시아 스텝에서 유목민인 원시 인도-유럽인(쿠르간인)이 유럽으로 이주했다. 수렵 채집인, 고유럽인, 원시 인도-유럽인이라는 서로 다른 3개의 집단이 9천여 년 간의 혼혈과 융합의 결과가 현대 유럽인(인도-유럽인)이다.

현대 유럽인(인도-유럽인)은 이러한 다양한 집단의 혼혈의 결과이고, 오늘날 인도-유럽인 간에도 형질적으로(physically) 차이가 있는 것은 각각의 집단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의 비율의 차이와 유전적 변이 때문이다.

금발도 유전적 변이의 산물이다. 즉 순혈집단으로서의 유럽인 및 백인이라는 정체성은 대항해시대(15세기 중반-18세기 중반)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유럽을 역사적으로 살펴보자. 신성로마제국은 다민족 영토복합체였다. 따라서 일정 정도 독자성을 갖는 국가(군주)들과 360개의 자유도시들의 연합체였다. 즉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강력한 황제가 아니라, 귀족들의 대표였다. 더구나 황제의 권력은 점점 약해지는 반면, 구성원들의 권력은 점점 강해졌갔다.

자본의 발달로 자유도시가 성장하자, 사람들은 자본축적에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신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황제는 구교(가톨릭)의 대리자로서 통합을 추구한 반면, 구성원인 자유도시들은 신교를 지지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크게 구교(제국보수파)와 신교(자유도시파)의 대립구도가 만들어졌고, 전쟁으로 이어졌다. 1618년부터 1648년까지 독일을 무대로 30년 전쟁이 있었고, 베스트팔렌조약을 통해 전쟁을 종결지었다.

한편 국가 사이의 관계에서 국가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국제법의 핵심 규칙들은 15세기와 16세기에 걸쳐 발전되어 왔다. 이러한 국제법 규칙의 완성이 1648년의 베스트팔렌조약(Westfälischer Friede)이다.

30년 전쟁은 서유럽 최후의 종교전쟁이다. 베스트팔렌조약은 역사상 최초의 근대적 국제 협약으로 평가된다. 베스트팔렌조약의 영향으로 민족과 종교, 문화적 구별이 뒤섞인 전근대적 국가관이 붕괴되고 외교주권을 가진 국민국가(nation state)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었다.

베스트팔렌조약을 통해서 종교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영토국가를 근대 국가체제의 초석으로 놓은 것이다. 국가의 근대적 개념화는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고, 이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는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었다. 세계사의 관점에서 볼때는 짧은 역사이다.

조선에서 임진왜란(1592년-1598년)과 병자호란(1636년-1637년)이 끝난 것이 베스트팔렌조약보다 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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